키오스크 앞에 멈춰 선 할머니
얼마 전 백화점에서 보았던 한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키오스크 앞에 서서 주문을 하려던 할머니 한 분이 화면을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하고 계셨다. 화면에는 여러 가지 메뉴와 선택 버튼이 가득했고, 무엇을 먼저 눌러야 할지 쉽게 알기 어려워 보였다.
그때 곁에 있던 젊은이들이 다가와 친절하게 주문을 도와주었다. 할머니는 그들의 설명을 들으며 하나씩 화면을 눌렀고, 마침내 주문을 마칠 수 있었다.
참 따뜻한 모습이었다. 모르는 사람에게도 선뜻 손을 내미는 젊은이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런데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내 마음 한구석에는 조금 다른 감정도 남았다.
‘저 할머니는 얼마나 당황스러우셨을까. 그리고 나도 언젠가 저런 순간을 만나지 않을까.’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데, 그 앞에서 잠시 멈춰 서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나는 어디쯤 서 있을까
요즘은 어디를 가도 화면을 마주한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도, 기차표를 예매할 때도, 병원에서 접수를 할 때도 그렇다. 은행 업무와 공공기관의 서비스까지 점점 더 많은 일이 스마트폰과 컴퓨터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예전에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던 일들이 이제는 화면 속 작은 글씨와 버튼을 이해해야 가능한 일이 되었다.
물론 기술이 주는 편리함은 크다. 집에서도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고, 멀리 있는 가족과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다. 모르는 것을 검색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도 한결 쉬워졌다.
하지만 그 편리함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것일까.
젊은 사람에게는 당연한 과정이 노년에게는 낯선 숙제가 될 수 있다. 화면이 바뀌고 버튼의 위치가 달라지면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한다. 뒤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급해지고, 실수라도 할까 봐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조심스러워진다.
기술은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데, 익숙해질 틈도 없이 따라가야 하는 사람의 마음은 때로 그 자리에 멈춰 선다.
친절한 도움 뒤에 남는 마음
키오스크 앞의 할머니를 도와주던 젊은이들의 모습은 참 고마웠다. 누군가의 어려움을 알아보고 먼저 다가가는 마음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대신할 수 없는 따뜻함이다.
그러나 도움을 받는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고맙다는 생각과 함께 미안함이 들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아 서둘러야 한다는 부담도 생길 수 있다. 몇 번을 설명해 주어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스스로가 작아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물론 그 할머니가 실제로 어떤 마음이셨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낯선 기계 앞에서 망설이는 순간을 떠올렸다.
누군가 도와주면 고맙지만, 가능하다면 나 스스로 해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모든 일을 대신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조금 느리더라도 내 손으로 해보고, 틀리면 다시 배우고,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고 싶은 것이다.
도움은 필요하다. 그러나 도움을 받는다는 이유로 내 선택권까지 내려놓고 싶지는 않다.
일흔에도 나는 배우는 중이다
나 역시 새로운 기술 앞에서 늘 자신 있는 사람은 아니다. 컴퓨터를 처음 배울 때는 전원을 켜는 일부터 낯설었고, 키보드의 한글과 영어 자판을 익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우스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일이 쑥스러울 때도 있었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 싶어 망설이기도 했다.
그런데 조금씩 배우다 보니 알게 되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요즘 나는 건강을 위해 헬스장에 가고, 도서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집에 돌아오면 컴퓨터를 켜 글을 쓴다. 모르는 것을 AI에게 물어보기도 한다. 답을 읽고, 이해하려고 애쓰고, 내 생각과 경험을 글로 옮긴다.
AI가 글을 다듬어 주고 필요한 정보를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은 참 신기하고 편리하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느끼는 감정과 살아온 기억까지 대신해 줄 수는 없다.
내가 살아온 시간,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느낀 기쁨과 서운함은 나만의 것이다. 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그런 나의 이야기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얻는 일이기도 하다.
편리함이 누군가의 장벽이 되지 않으려면
AI 시대의 노년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빠르게 배우라는 재촉만은 아닐 것이다.
천천히 익힐 수 있는 교육, 실수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는 환경, 어려울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필요한 서비스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로 기술을 익힐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기술을 이용하기 어려운 사람을 위한 길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키오스크가 편리하다면, 사용이 어려운 사람에게 설명해 주는 방법도 있어야 한다.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일이 늘어난다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위한 안내와 대면 지원도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
기술의 발전을 멈추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발전의 혜택이 일부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배우고 선택하는 사람이다
백화점 키오스크 앞에서 젊은이들의 도움을 받던 할머니의 모습은 내게 작은 질문 하나를 남겼다.
우리는 기술을 얼마나 빠르게 발전시킬 것인가만큼이나, 그 기술 속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있을까.
노년은 과거에 머물러 있는 세대가 아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도 하며, 앞으로의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호기심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끝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젊은 사람보다 시간이 더 필요할 수 있고, 조금 더 친절한 설명이 필요할 수 있다.
그 차이를 무능함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AI는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바꾸어 놓을 수 있다. 그러나 그 편리함이 사람을 작아지게 만들고, 스스로 결정할 기회를 빼앗는다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앞서가더라도 사람의 마음까지 뒤처져서는 안 된다.
키오스크 앞에서 망설이는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주문을 대신해 주는 손길만이 아닐 것이다. 천천히 해도 괜찮다는 기다림, 스스로 해볼 수 있도록 곁에서 돕는 마음, 그리고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당연한 믿음일 것이다.
AI 시대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결국 사람이다. 편리함이 소외를 만들지 않고, 발전이 누군가를 밀어내지 않는 세상.
나도 그 세상 속에서 계속 배우고, 내 삶을 내 손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