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과 존중에 대하여
바다를 그리워하며 시작한 수영
문화센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부서 중 하나가 수영이다. 물속에서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한번 배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가에서 자란 내게 물은 낯선 존재가 아니었다. 어린 시절 바다에서 놀던 기억이 아련히 떠올라, 나도 다시 물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새롭게 시작하는 수영. 처음에는 설렘이 컸다. 나이가 들어도 무언가를 배우고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물속에 몸을 담그니 오래전 바닷가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의 내가 잠시 돌아온 듯했다.
그런데 수영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나는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었다.
수영장에 울려 퍼진 큰 호령
그날 수업은 도구를 사용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런 수업 방식에 익숙하지 않았다. 물속에 있다가 나와서 필요한 도구를 챙긴 뒤 다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담당 선생님의 큰 목소리가 수영장에 울려 퍼졌다.
반대편으로 돌아가 입수하라는 지시였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나는 수영장 트랙을 반 바퀴 돌아 반대편으로 가야 했다.
처음이라 수업 방식을 제대로 몰랐던 내 행동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 수영장에는 안전을 위한 규칙이 있고, 여러 사람이 함께 수업을 받으니 선생님에게도 지켜야 할 질서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수업의 방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 내게 들려온 것은 설명이나 안내가 아니라 성난 호령이었다.
나는 수영복 차림으로 수영장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반 바퀴를 돌아가는 짧은 시간이 그날따라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지나치게 구는군.’
‘그냥 탈의실로 가 버릴까.’
‘내가 칠순을 넘긴 나이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식보다 더 어린 사람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화가 났다. 자식들 생각이 나자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태연히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속보다 더 차가웠던 마음
다시 들어간 수영장에는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물속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얼어붙은 듯 분위기가 싸늘했다.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조금 전과 같은 신나는 기운을 느끼기 어려웠다. 선생님은 답답한 듯 또다시 “왜들 이래” 하며 힘들어했다.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나는 일기장을 펼쳤다.
가르치는 사람은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동작과 기술만 익히게 하면 되는 것일까. 처음 배우는 사람이 서툴고 느린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모르는 것을 몰랐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분위기라면, 배우는 사람은 어떻게 질문하고 실수를 고쳐 나갈 수 있을까.
물론 선생님도 많은 사람을 지도하며 힘든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수업을 원활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분의 사정을 내가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사정이 있더라도, 큰소리와 위압적인 태도가 사람에게 남기는 마음의 상처는 가볍지 않다.
특히 나이가 들면 몸의 움직임만 느려지는 것이 아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고, 사람들 앞에서 실수했을 때 마음을 추스르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럴수록 필요한 것은 재촉이 아니라 설명이고, 야단이 아니라 기다림이 아닐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젊었을 때는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엄마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한 사람이었다. 자식을 키우고, 살림을 하고, 내게 주어진 삶을 감당하느라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많지 않았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어느새 일흔을 넘겼다.
나이가 들면 마음이 저절로 너그러워지고 모든 일을 초연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나이가 들어 보니 그렇지만도 않다. 서운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아프고, 무시당했다고 느끼면 젊었을 때와 다르지 않게 속이 상한다.
오히려 살아온 세월이 길어질수록 사람의 말과 태도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더 깊이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이제 젊은 시절처럼 무엇이든 빠르게 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고 싶지는 않다. 조금 느려도 괜찮고, 처음이라 서툴러도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 주고 싶다.
그렇다고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함부로 대접받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나 역시 배우고 싶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내 삶을 살아가고 싶은 한 사람이다.
젊음이 권리가 아니다
요즘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기술도, 생활 방식도,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지고 있다. 젊은 세대는 새로운 환경에 익숙하고, 노년 세대는 그 변화를 따라가느라 애를 먹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익숙함이 곧 우월함은 아니다. 어떤 일을 잘 안다고 해서 모르는 사람을 낮춰 보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많다고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고, 젊다고 언제나 모자라는 것도 아니다.
내가 수영장에서 느꼈던 황망함은 젊은 사람에게 야단을 맞았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은 서로를 존중해야 하고 상대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한 태도를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이해할만한 설명도 없이 막무가내로 내몰리고 있는 무력한 존재가 된 듯한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젊은 사람에게는 젊은 날의 어려움이 있고, 노년에게는 노년의 어려움이 있다.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같은 공간에 있어도 마음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특별한 대접을 받자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젊은 사람을 대할 때 나의 경험과 나이를 앞세우기보다, 젊은이의 넘치는 기백을 소중히 여기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한 사람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나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날 나는 결국 수영장을 떠나지 않았다. 감정보다 선생님의 권위를 떨어 뜨리지 말아야겠다는 이성적 마음이 있어서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 선택이 잘한 일이었는지, 그때 그냥 나왔어야 했는지는 지금도 단정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그날의 경험이 내 마음에 오래 남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일흔이 넘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고 싶고, 건강하게 살아가고 싶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계속 알아가고 싶다.
그러려면 나의 서툰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질문할 용기를 가져야 하고 다른 사람의 서툰점을 만났을 때에는 조금 더 기다려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살아온 세월 그 긴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았는지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고. 젊었을 때는 앞만 보고 달렸고, 이제야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돌아보게 된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단지 늙어 가는 일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지 다시 생각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수영 시간에도 나는 물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조금 서툴러도, 조금 느려도 괜찮다. 배우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규칙은 배우고, 부당하게 느껴지는 일에는 내 마음을 차분히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낯선 곳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나는 먼저 다가가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처음이라 그러실 수 있어요. 천천히 해 보세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덜 서럽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살아온 세월이 조금은 아름다워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