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에 다시 시작한 사람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이야기
나는 이제 일흔을 넘겼다.
누군가는 일흔이라는 나이를 인생의 끝자락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요즘 오히려 인생이 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돌아보면 참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젊은 날에는 하루하루가 너무 바빠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깊이 들여다볼 여유도 없었다. 가족을 돌보고,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고, 눈앞에 놓인 일을 해내며 살았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한 해가 가더니 어느새 일흔이 되었다.
그제야 조금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며 살아왔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젊었을 때는 앞만 보고 달렸다면, 지금은 지나온 길과 앞으로 걸어갈 길을 함께 바라보게 된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나를 돌아보면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나는 생각보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컴퓨터를 배우면서도 그랬다.
처음에는 전원을 켜는 것부터 낯설었다. 키보드의 한글과 영어 자판도 익숙하지 않았고, 마우스 하나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젊은 사람들은 너무 자연스럽게 하는 일을 나는 하나씩 물어봐야 했다.
처음에는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이 나이에 이것도 모르나.’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모르는 채로 포기하는 것이 더 아쉬운 것 아닐까.
그래서 다시 물어보고, 다시 해보고, 또 틀렸다.
그렇게 조금씩 컴퓨터와 친해졌다.
그러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블로그를 만들고, AI에게 질문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인공지능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친구가 되어 주었다.
나는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요즘 나의 하루에는 예전에는 없던 일들이 생겼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영어를 공부하고, 집에 돌아오면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리고 글을 쓴다.
영어도 아직 능숙하지 않다.
컴퓨터도 모르는 것이 많다.
AI도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싫지 않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하나를 알게 되면 또 궁금한 것이 생긴다.
궁금해서 물어보고, 답을 읽고, 직접 해본다.
잘되면 기쁘고, 안 되면 다시 해본다.
아마 이것이 내가 늙어가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삶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삶을 배워가고 있다.
나는 가끔 서운하고 화도 나는 사람이다
나는 언제나 너그럽고 평온한 사람은 아니다.
수영을 배우러 갔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를 들었던 날처럼, 나도 화가 나고 서러운 순간이 있다.
그날 수영복을 입고 수영장 트랙을 반 바퀴 걸어가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칠순이 넘었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눈물이 핑 돌았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여전히 상처를 받는다.
오히려 살아온 세월이 길어서인지 사람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오래 마음에 남는지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날 나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단순히 주름이 늘고 몸이 느려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진 만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조금 더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 역시 다른 사람의 서툼을 기다려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지나간 세월이 아쉽다
돌이켜보면 아쉬운 것도 많다.
조금 더 나를 위해 살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조금 더 베풀고, 여행도 많이 하고, 더 많이 웃으며 살았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그것이 중요한 줄 몰랐다.
삶이 늘 내일도 계속될 것처럼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은 하루가 얼마나 귀한지 안다.
이제는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후회하기보다 남은 시간을 잘 살아야지 싶다.
지나간 세월은 바꿀 수 없지만 오늘의 하루는 바꿀 수 있으니까.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 때문에 상처받기도 한다
나는 사람 사이의 정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무례한 말이나 무심한 태도가 마음에 오래 남는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떠 받들어 달라는 것 아니다.
혹여 나이 든 자의 오지랖으로 말이 좀 많아질 때면 정중하게 듣는 척해 줄 수 있는 따뜻한 태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젊은 세대에게도 그들만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세대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탓하기보다, 조금씩 이해하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어쩌면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따뜻한 말 한마디.
조금 기다려 주는 마음.
상대방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
나는 나이가 들수록 그런 작은 것들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나는 아직 꿈이 있다
일흔이 넘었다고 해서 꿈까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젊었을 때 보다 더 많은 꿈을 꾼다.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고 싶은 마음도 없는 것이 아니나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 내가 배운 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내가 쓴 글을 누군가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가 그냥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서툴지만 한 편씩 글을 쓴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한 장 한 장 기록해 놓으면 언젠가 그것이 나만의 작은 자서전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완성된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살아보니 사람은 죽는 날까지 완성되지 않는 것 같다.
오늘 알게 된 것을 내일 잊기도 하고, 어제 다짐했던 것을 오늘 지키지 못하기도 한다.
기도 모임이 있는 것을 아침부터 알고 있었으면서도 하루가 바쁘게 지나가다 깜빡 잊어버린 날처럼 말이다.
그런 날이면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한다.
‘괜찮다. 내일 다시 하면 된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의 내가 가진 가장 큰 변화인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실수하면 나 자신을 많이 탓했지만, 이제는 다시 시작할 힘을 남겨두려고 한다.
일흔, 나는 다시 시작한다
나는 특별하거나 대단한 사람은 아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사람도 아니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낸 사람도 아니다.
기쁘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다.
때로는 자신감이 넘쳤고, 때로는 세상 앞에서 작아지기도 했다.
사람 때문에 웃었고 사람 때문에 울기도 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아직 살아 있고, 아직 궁금한 것이 있으며, 아직 배우고 싶은 것이 있다.
일흔이라는 숫자를 바라보며 ‘이제는 늦었다’고 말하기보다,
‘건강함을 감사하면서 아직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려고 한다.
어쩌면 나의 진짜 인생은 지금부터인지도 모른다.
젊은 날의 나에게는 나를 바라볼 시간이 없었다. 마음의 여유도 부족했다.
지금의 나에게는 생활의 여유로움은 많아졌으나 살아갈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그래서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오늘을 최대한으로 길이를 길게 늘여서 살아보려 한다.
좀 느릴지라도,
조금 서툴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내가 걸어온 칠십 년은 이미 지나갔다.
그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다.
하지만 앞으로 걸어갈 길에는 아직 내 발자국을 남길 수 있다.
나는 그 길을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따뜻하게 걸어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 이렇게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참 많이 서툴렀지만, 그래도 나는 내 인생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