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의 고양이

우리 집에 고양이가 오게 된 건 전적으로 딸의 선택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엄마, 고양이 키우면 안 돼?” 하고 묻던 그 표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오래 고민한 눈빛이었다.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생명을 데려온다는 건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은 매일같이 책임질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고, 결국 작은 이동장 속에 들어 있는 고양이가 우리 집 현관을 넘게 되었다.
처음 며칠은 낯설고 조심스러웠다. 고양이는 집구석구석을 탐색하며 숨을 곳부터 찾았고, 나는 발걸음 하나에도 신경을 쓰게 됐다. 밤에 들리는 작은 소리에도 혹시 고양이가 놀라진 않았을까, 밥은 잘 먹고 있을까 괜히 마음이 쓰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딸의 고양이’를 도와주는 보호자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자 고양이는 자기 자리를 정확히 찾아갔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 딸의 책상 옆, 그리고 딸의 침대 한쪽. 특히 딸의 방은 고양이에게 가장 안전한 공간이 되었다. 딸이 책을 읽을 때면 옆에 앉아 조용히 숨소리를 맞췄고, 밤이 되면 먼저 자리를 잡고 딸을 기다렸다. 딸은 고양이에게 하루의 끝을 맡기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그 옆에 누웠다.
딸의 하루가 힘들어 보이는 날이면 고양이는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딸이 아무 말 없이 방에 들어와도 곁을 떠나지 않았고, 딸이 울음을 삼키는 순간이면 살며시 몸을 기대 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알았다. 말보다 침묵이, 위로보다 동행이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고양이는 그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나 역시 조금씩 변해갔다. 고양이를 위해 사료를 고르고, 털을 빗겨주고, 병원에 데려가면서 자연스럽게 정이 들었다. 무엇보다 딸이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며 마음이 놓였다. 작은 생명을 대할 때의 조심스러움, 책임감, 그리고 애정. 고양이는 딸을 철들게 했고, 동시에 딸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느 날 딸이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얘는 내가 아무 말 안 해도 알아.” 그 말 속에는 외로웠던 순간도, 말하지 못한 마음도 함께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고양이가 딸에게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친구이자 가족이고, 세상과 맞서 싸울 때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쉼터라는 것을.
이제 고양이는 더 이상 ‘딸의 고양이’라는 말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 집의 시간표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고, 식탁 아래를 지키고, 저녁의 적막을 채운다. 하지만 여전히 고양이의 중심에는 딸이 있다. 고양이는 딸의 기분을 가장 먼저 알고, 딸의 귀가 시간을 기억하며, 딸의 하루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존재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우리 딸에게 이 고양이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라, 성장의 한 시기를 함께 건너가는 동반자라는 것을. 말없이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있다는 건, 어쩌면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축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