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남편이 취업을 위해 면접 보러 가는 날
면접을 보러 가게 됐다면서 설레어하시는 남편의 하얀 머리에 염색 을 했다. 깜장 머리에 하얗 눈썹이 너무나 우스꽝스러웠다. 눈썹까지 살살 염색약을 다시 바르고 둘이서 한참을 웃었다. '세월이 참 많이 갔구나' 어느새 눈썹까지 하얗게 쇠어버린 노인이 되었으니. 오늘 아침은 유난히 집 안이 조용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남편의 조심스러운 발소리, 컵을 내려놓는 소리, 조용히 여닫는 화장실의 문소리, 모든 것이 평소보다 느리고 신중했다. 그 소리에는 긴장과 각오가 섞여 있었다. 노년의 남편이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가는 날, 우리 집 아침 풍경은 그렇게 시작됐다.
식탁 위에는 평소보다 단정한 아침이 놓였다.화려하지는 않지만 속을 편하게 해 줄 촉촉한 밥, 짭짤하지 않게 무친 나물, 국은 일부러 미지근하게 식혀 두었다. 면접 보러 가는 사람에게 괜히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숟가락을 들었다가 내려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입맛이 없나요?” 하고 물었더니, 고개를 저으며 “아니야, 괜히 배 아플까 봐”라고 말했다. 그 말에 웃으면서도 마음이 짠했다. 젊은 시절 수많은 출근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면접 하나에도 몸부터 챙겨야 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밥을 먹고 나서 남편은 옷장 앞에 섰다.이미 어젯밤부터 몇 번이나 꺼내 보았던 정장이다. 어깨가 조금 처졌고, 허리는 예전보다 여유가 있다. 그래도 최대한 깔끔하게 다림질을 해 두었다. 남편은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다 풀기를 반복했다. 손이 예전처럼 빠르지 않다. 나는 말없이 다가가 넥타이를 매주었다. “이게 나아, 아니면 어제 거?”그의 질문에는 옷에 대한 고민보다 ‘괜찮아 보일까’라는 불안이 더 담겨 있었다. “이게 좋아. 차분해 보여.”그 말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구두를 신으면서도 그는 한숨을 쉬었다.“요즘은 다들 젊잖아.”툭 던진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많은 생각이 들어 있었다. 나이는 숫자라지만, 면접장 앞에서는 그 숫자가 사람을 먼저 설명해 버린다. 나는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험은 아무나 못 가져. 그걸 당신이 가진 거야.”남편은 대답 대신 구두코를 한 번 더 닦았다. 괜히 눈이 마주칠까 봐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지만, 우리는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현관 앞에서 남편은 서류 가방을 다시 열어 확인했다.이력서,자격증 사본, 메모해 둔 자기소개 문장.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손끝이 떨렸다.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젊은 날에도 그는 중요한 날이면 이렇게 꼼꼼했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다시 시작’이라는 무게를 함께 들고 있다는 것이다.
문을 나서기 전,남편은 잠시 멈춰 섰다. “나 너무 늙어 보이진 않겠지?”그 질문에 나는 잠깐 말을 고르다 솔직하게 답했다. “늙어 보일 수도 있지. 하지만 성실해 보일 거야.”괜히 위로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현실을 아는 사람이 주는 말이 더 힘이 될 거라 믿었다. 남편은 잠시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됐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그는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출근하던 젊은 날과 겹쳐 보였다. 하지만 문이 닫히고 나자 집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식탁 위에 남은 국, 의자에 걸린 집 안 옷, 그리고 아직 식지 않은 긴장감. 나는 창가에 서서 한동안 밖을 바라봤다. 오늘 면접 결과가 어떻든, 이 아침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노년의 취업 면접은 단순히 일을 구하는 일이 아니다. 자존심과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고,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동시에 마주하는 일이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배우자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응원하고 싶지만 불안하고, 믿고 싶지만 현실을 안다. 그래도 오늘 아침, 우리 집에는 분명 용기가 있었다. 다시 한번 문을 나서는 용기, 그리고 그 등을 말없이 보내는 용기.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빌었다.오늘 면접관들이 그의 나이보다 눈빛을 먼저 봐주기를, 경험의 무게를 숫자로 재지 않기를. 하지만 설령 결과가 기대와 다르더라도, 오늘 아침의 이 풍경만으로도 그는 이미 충분히 잘 해냈다고. 다시 시작을 선택한 그 자체가, 이 집에서는 가장 큰 합격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