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적령기를 훨씬 넘긴 노총각 아들 장가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아들을 키우는 동안 결혼 걱정은 늘 뒤쪽에 있었다. 학교 보내고, 군대 보내고, 취직만 하면 자연스럽게 제 몫의 가정을 꾸릴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새 달력은 여러 장을 넘겼고, 아들은 여전히 혼자다. 주변에서는 농담처럼 “요즘은 다 늦게 해요”라고 말하지만, 부모 마음은 그렇지 않다. 말은 안 해도 속은 타 들어간다. 이 나이가 되도록 혼자인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를 묻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 괜히 말했다가 잔소리가 될까 봐, 상처가 될까 봐 입을 다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우리가 너무 오래, 너무 강하게 보호해 온 건 아닐까.
부모가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아들을 재촉해 온 방식이다. “언제 결혼하냐”는 말은 관심처럼 들리지만, 아들 입장에서는 평가이자 압박이 된다. 사회에서 치이고, 경제적 부담에 눌리고, 인간관계에서 상처도 받았을 텐데, 집에 와서까지 결과를 요구받으면 마음을 닫게 된다. 장가를 보내고 싶다면 먼저 결혼 이야기를 내려놓아야 한다. paradox처럼 들리지만, 결혼을 목표로 삼는 순간 아들은 더 멀어진다. 대신 삶에 대해 묻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요즘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엇이 가장 힘든지, 혼자인 게 편한 건지 아니면 두려운 건지,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 하나, 부모의 불안이 아들에게 전염되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펴봐야 한다. “이 나이에 혼자면 문제 있는 것 아니냐”는 시선은 말하지 않아도 분위기로 전달된다. 그 시선은 아들로 하여금 더 조심스럽고 더 움츠러들게 만든다. 결혼은 누군가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일이기에, 자기 확신이 무너지면 더 어려워진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너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다시 심어 주는 일이다. 지금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일상 속에서 반복해 주는 것이다.
현실적인 부분도 외면할 수 없다. 결혼을 미루는 이유 중 상당수는 경제적 부담이다. 집 문제, 노후 걱정, 책임에 대한 두려움은 생각보다 크다. 이럴 때 부모가 모든 것을 대신 해결해 주겠다고 나서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대신 필요한 만큼, 명확한 선을 그어 도와야 한다. 결혼을 미끼로 한 지원이 아니라, 독립된 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지원이어야 한다. 그래야 결혼이 ‘부모를 위한 과제’가 아니라 ‘자기 삶의 선택’이 된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환경도 중요하다. 직장과 집만 오가는 생활 속에서는 인연이 생기기 어렵다. 그러나 “소개팅 좀 해봐라”라는 말 한마디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대신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계기를 넓혀 주는 것이 현실적이다. 취미 모임, 배움의 자리, 봉사 활동처럼 목적이 분명한 공간에서 만나는 관계는 부담이 덜하고 오래간다. 부모는 방향만 제시하면 된다. 끌어당기려 하지 말고, 문을 열어 주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가를 보내는 것이 부모의 숙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다. 자식의 인생은 부모가 대신 완성할 수 없다. 결혼하지 않아도 불행하지 않을 수 있고, 결혼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이 사실을 부모가 먼저 받아들일 때,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은 더 가볍게 관계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결혼을 해야만 인정받는 존재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해도 존중받는 존재라고 느낄 때 사람은 비로소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연다.
부모의 심정은 복잡하다. 외롭지 않을까 걱정되고, 아플 때 곁에 아무도 없을까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그 걱정은 사랑의 다른 얼굴이지, 정답은 아니다. 장가를 보내고 싶다면 조급함을 내려놓고, 통제하려는 마음을 접고, 아들의 삶을 믿어야 한다. 결국 인연은 밀어 넣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다만, 부모의 믿음과 기다림 속에서 아들은 자기 속도로 누군가를 만날 용기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부모가 해 줄 일은 많지 않다. 그저 조용히 기뻐해 주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