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다복
  • 행복
  • 무상
카테고리 없음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익어가는 믿음.

by kds 2026. 10. 3.
반응형
 

수필 · 신앙 에세이

가을

가을은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이다. 사계절 중 유독 가을을 좋아하는 것은 아마도 그 속에 담긴 고요함과 넉넉함, 그리고 쓸쓸하면서도 깊은 아름다움 때문일 것이다.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가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살갗을 스치면 어느새 마음에도 잔잔한 평화가 깃든다. 여름 내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나뭇잎들은 저마다 고운 빛깔로 물들어 가고, 길가에 떨어진 낙엽은 계절의 발걸음을 조용히 알려준다.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의 가녀린 몸짓,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민 노란 국화의 향기,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는 들판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나는 가을이 좋다. 눈부시게 화려하기보다는 은은하고,  뜨겁게 타오르기 보다는 따스하며, 무언가를 드러내기보다는 깊이 품고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가을에는 괜스레 걸음을 늦추고 싶어진다. 바쁘게 달려온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길을 걷고,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보고, 불어오는 바람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고 싶어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계절의 변화가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젊은 날에는 그저 스쳐 지나가던 풍경이 이제는 마음에 오래 머물고, 작은 들꽃 하나에도 창조주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가을은 그렇게 나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넘어 삶을 사랑하는 법을 다시 가르쳐 준다.

 

가을은 풍성한 열매로 우리에게 감사의 계절이기도 하다. 들녘에는 벼가 고개를 숙이고, 과수원에는 사과와 배가 탐스럽게 익어 간다. 포도송이는 햇살을 머금고 알알이 영글며, 산자락에는 밤과 도토리가 여물어 간다. 봄에 뿌린 작은 씨앗 하나가 여름의 비와 햇볕을 견디고 마침내 결실을 맺는 모습을 보면 자연의 섭리가 얼마나 신비로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어느 것 하나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거센 비바람을 견디며, 때를 기다려야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

 

우리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라.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기쁨과 감사의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뜻하지 않은 어려움에 마음이 무너지고, 아무리 애써도 열매가 보이지 않아 낙심한 날도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 모든 시간 속에도 나를 지키시고 이끌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순간에도 하나님은 나의 삶을 돌보셨고, 눈물로 지나온 시간조차 오늘의 나를 이루는 밑거름이 되게 하셨다.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것이 크고 화려하지 않을지라도 건강한 몸으로 하루를 맞이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며, 믿음 안에서 소망을 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풍성한 가을 열매 앞에서 나는 세상의 풍요보다 더 깊은 은혜의 풍요를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도 내게 허락하신 작은 것 하나하나를 감사의 마음으로 헤아려 본다.

 

익어가는 믿음

이제 나의 시선은 들판의 열매에서 내 마음의 밭으로 향한다. 자연의 추수가 끝나 가는 이 계절에 나는 과연 내 안에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 조용히 돌아본다. 한 해 동안 내 마음에는 어떤 씨앗이 뿌려졌을까. 누군가를 향한 따뜻한 사랑이 자랐을까. 이해와 용서의 마음은 조금 더 넓어졌을까. 세상의 염려와 욕심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지는 않았을까.

 

믿음의 길을 걸어온 시간이 길어졌다고 해서 저절로 성숙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을 낮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마음속에는 여전히 미움과 서운함이 남아 있고, 입술로는 사랑을 말하면서도 내 뜻과 다르면 쉽게 흔들리는 연약함이 있다. 그래서 가을은 나에게 영적인 추수의 계절이기도 하다. 무엇을 더 얻고 채울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 무엇을 비우고 내려놓아야 할지를 묻게 한다.

 

주님, 내 마음의 밭을 살펴주소서. 굳어진 땅은 부드럽게 하시고, 잡초처럼 자라난 교만과 욕심은 뽑아내 주시며, 메마른 곳에는 은혜의 단비를 내려주소서. 남은 생애 동안 세상의 인정이나 재물의 풍성함보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가 내 삶의 향기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나의 작은 손길이 외로운 이에게 따뜻한 온기가 되며, 나의 존재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 그것이야말로 내가 거두고 싶은 가장 귀한 영적 추수일 것이다.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하늘은 깊고 푸른 가을빛으로 물들어 간다.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드넓음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은 마치 하나님께서 펼쳐 놓으신 영원의 창문처럼 느껴진다. 저 하늘 너머에는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영원한 세계가 있고,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시는 주님이 계신다는 사실은 내 마음에 말할 수 없는 소망을 안겨 준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제자들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예수님께서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전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말씀을 떠올리면 나 역시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게 된다. 세상은 날마다 변하고, 계절은 쉼 없이 흘러가며, 우리의 인생도 어느덧 저물어 간다. 그러나 주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 그분이 다시 오실 날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날이 반드시 온다는 믿음이다.

 

이제 나는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본다. 오래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허락하신 하루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리라. 건강을 돌보고, 배우기를 멈추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따뜻한 정을 나누며, 무엇보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은 단순히 하늘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임을 안다. 등불을 밝히고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깨어 있는 믿음으로 하루를 채우고 싶다.

 

가을은 아름답지만 영원히 머물지는 않는다. 곱게 물든 나뭇잎도 언젠가는 떨어지고, 풍성했던 들판도 겨울의 고요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낙엽이 지는 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겨울의 침묵 속에서도 생명은 땅속 깊은 곳에서 다음 봄을 기다린다. 나의 인생도 그러하리라. 육신은 세월의 흐름을 따라 조금씩 쇠하여 가겠지만, 내 안의 믿음은 날마다 새로워지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나는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한다.

 

주님, 아름다운 가을을 허락하셔서 감사합니다. 풍성한 열매를 보며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고, 내 마음의 밭에도 믿음과 사랑의 열매가 가득 맺히게 하소서. 저 푸른 하늘 너머에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오늘도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하소서.

 

가을이 깊어갈수록 주님을 향한 나의 기다림도 깊어지기를. 그리고 마침내 주님을 뵙는 그날,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기쁨의 추수 단을 안고 주님 앞에 서기를 소망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