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시대, 청년들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게될까.
인공지능의 시대, 청년들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대접을 받으며 살아가게 될까
인공지능은 더 이상 미래의 기술이 아니다. 이미 청년들의 일상과 노동 현장 깊숙이 들어와 있다. 취업 공고를 선별하는 알고리즘, 이력서를 1차로 평가하는 자동화 시스템, 고객 응대를 대신하는 챗봇까지. 청년들은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세대’이자 동시에 ‘대체당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세대’로 이중의 위치에 서 있다.
1. 노동시장에서의 청년, 시작선이 사라진 세대
과거에는 청년에게 “경험이 부족하다”는 말이 통용되었다. 그러나 인공지능 시대에는 이 말의 의미가 달라졌다. 기업은 더 이상 긴 시간의 훈련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다. 즉시 투입 가능한 인력, 혹은 아예 사람을 쓰지 않는 선택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반복적 업무, 기초 사무, 단순 분석은 이미 AI가 대신한다. 그 결과 청년들은 ‘배움의 사다리’에 오르기 전부터 탈락하는 구조에 놓인다.
실제로 국내외 연구에 따르면, 자동화 위험이 높은 직무는 주로 청년층이 진입하던 초급 직무에 집중돼 있다. 이는 청년의 실업률이 단순한 경기 문제를 넘어 구조적 문제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2. “능력 있으면 살아남는다”는 말의 함정
인공지능 시대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은 더 잘 살게 된다.” 이 말은 절반만 맞다. 문제는 능력을 키울 시간과 자원, 환경이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학자금 대출, 주거 불안, 불안정한 소득 속에서 자기 계발을 요구받는다. AI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창의적이어야 하며, 끊임없이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결국 청년은 **‘미완성인 채로 완성된 존재처럼 행동해야 하는 세대’**가 된다. 실수할 여유는 없고, 실패는 개인의 무능으로 해석된다. 이것이 인공지능 시대 청년들이 받는 가장 냉혹한 대접이다.
3. 플랫폼 노동과 불안정한 존중
배달, 콘텐츠 제작, 프리랜서 플랫폼 등은 청년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청년은 ‘노동자’라기보다 ‘데이터 단위’에 가깝다. 알고리즘의 평가에 따라 일이 배정되고, 보상이 결정된다. 인간적인 관계나 보호 장치는 약하다.
대접 역시 조건부다. 평점이 떨어지면 기회도 사라진다. 청년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며, 침묵하면 도태된다. 존중은 존재가 아니라 성과에 붙는다.
4. 그럼에도 청년이 서게 될 자리
그러나 모든 전망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도 분명하다. 공감, 관계, 판단, 책임, 돌봄, 윤리. 청년들은 기술에 가장 익숙한 동시에, 기술이 만들 수 없는 인간적 가치를 새롭게 정의할 가능성을 가진 세대다.
미래의 청년은 단순한 노동력이 아니라, 기술과 인간 사이의 균형을 설계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 다만 이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사회가 청년을 ‘소모 가능한 자원’이 아닌 ‘함께 미래를 짊어질 동반자’로 대우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5. 중장년의 시선에서 바라본 청년들의 미래
중장년 세대의 눈으로 보면,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갈 청년들은 분명 우리와는 전혀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 우리는 “경험은 쌓이면 힘이 된다”는 말을 믿으며 살아왔지만, 청년들은 이제 경험보다 속도와 적응력, 그리고 기계와 함께 일하는 감각을 먼저 요구받는다. 한 직장에서 오래 버틴 시간이 존중받던 시대와 달리, 청년들은 짧은 이력과 잦은 이동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이 변화는 청년들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규칙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장년의 역할은 조언을 앞세우기보다, “우리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잠시 내려놓고 그들이 처한 구조를 이해하려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청년들이 받게 될 대접은 결국 사회가 그들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소모되는 인력이 아니라, 함께 방향을 만들어갈 동반자로 인정할 때, 인공지능 시대는 세대 간 단절이 아니라 연결의 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6.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
인공지능의 시대에 묻지 말아야 할 질문은 “청년이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가 아니다.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 사회는 청년이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는가?”
“기술의 효율이 인간의 존엄보다 앞서고 있지는 않은가?”
청년의 실상은 아직 정해진 미래가 아니다. 다만 지금의 선택들이 그 미래를 만들고 있을 뿐이다.